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산 갈매기 (문단 편집) === 응원가 === [[KBO 리그]]의 [[부산광역시]] 연고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성가'''와도 같으며 거의 '''부산의 애국가'''이다. 롯데 팬이라면 당연히 가사를 줄줄 외우고 있다. 롯데뿐만 아니라 다른 팀을 응원하는 야구팬들도 가사까지 다 알고 있고, 심지어는 야구를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대부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야구 응원가이기도 하다. 프로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이런 임팩트를 지닌 응원가를 가진 구단이나 종목은 드물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한정했을 때 [[윤도현]]의 '오 필승 코리아'가 있기는 하나 이는 범국민적인 차원이고, 프로팀 한정으로 팬들이나 선수들에게 이처럼 엄청난 효과를 가져다 주는 응원가는 별로 없다. 가사나 곡조도 비장감이 넘치는데다 더욱이 1~2점차로 뒤지는 가운데 이 노래가 들리기 시작하면 묘하게 분위기가 반전되는듯한 인상이 전해진다. 이에 비견될 만한 임팩트와 인지도를 가진 노래는 [[KIA 타이거즈]]의 [[남행열차]][* [[해태 타이거즈]] 시절인 1980년대~1990년대 초 한정으로는 [[목포의 눈물]]이 남행열차의 포지션에 있던 노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앰프가 설치되지 않았기에 해태 응원단장이었던 [[임갑교]] 씨의 [[색소폰]] 연주에 맞춰 관중들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는데 롯데 팬 못지않게 강했던 해태 팬들의 응집력과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소외론|호남지역민들이 느껴온 한과 울분]]이 결합되면서 그 분위기가 매우 비장했다고 한다. 부산 갈매기, 남행열차와 차이점이라면 노래가 끝난 뒤에 따로 뭔가가 있다는 점인데 목포의 눈물을 부른 뒤 해태 팬들은 [[김대중|야구선수가 아닌 한 정치인의 이름]]을 목터져라 외쳤다.] 정도.[* KBO 리그의 대표적 지역 응원가를 꼽으라면 부산 갈매기, 남행열차, 목포의 눈물 외에도 [[SSG 랜더스]]의 [[연안부두]], [[LG 트윈스]]의 [[서울(동음이의어)#이용의 곡|서울]]-[[서울의 찬가]]-[[서울의 모정]], [[한화 이글스]]의 [[내 고향 충청도]], [[NC 다이노스]]의 [[Come on Come on 마산스트리트여]] 등이 있지만 인지도와 파급력에 다소 한계가 있다.] 사실 이 노래가 언제부터 롯데의 응원가로 정착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노래의 발매 시점은 1982년으로 나와 있지만 이 시기는 별도의 응원가라고 할 만한 노래가 없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브라스 밴드 중심으로 응원단이 운영됐는데 이 시기에는 부산 갈매기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더 즐겨 불렀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 8회초 [[유두열]]의 역전 3점 홈런이 터지던 순간 롯데 응원단 밴드에서 연주한 곡도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 갈매기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더 먼저 나온 노래였고 인지도 또한 더 높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야구장 앰프를 통해 부산 갈매기를 합창할 수 있도록 한 것은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1992년 한국시리즈]] [[https://youtu.be/aCDwUBBoQw0?t=252|당시의 영상]]을 보면 야구장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문성재]]의 부산 갈매기 원곡 AR을 관중들이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야구장에서 경기 전-중-후에 고정적으로 부산 갈매기가 앰프에서 방송됐고 자연스럽게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문화가 형성됐다. 롯데 구단과 팬들에게 '부산 갈매기'라는 애칭이 본격적으로 붙여진 시기도 이 시기부터다. 현재처럼 롯데 응원단이 별도의 MR을 제작해서 관중이 다같이 부를 수 있도록 방식을 정착시킨 것은 2000년대 중반 [[조지훈(응원단장)|조지훈]] 응원단장 부임 이후부터다. 이 노래가 응원가로서 이름값을 극대화시킨 것은 롯데가 [[8888577|7년간 이어진 침묵을 깨고]] 부산 전체를 열광시켰던 2008년 [[로이스터 매직]] 시절 때였다. 당시 사직 야구장이나 잠실 야구장 내 롯데 관중석은 입추의 여지없이 가득 찼는데 롯데가 역전했을 때 또는 역전의 실마리를 찾아갈 때 신문지와 봉다리의 물결과 함께 수만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따라 부르는 부산 갈매기는 장엄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오죽 하면 상대 선수들은 [[https://youtu.be/v2Nx8XHmzgk?t=1781|롯데 팬들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내뿜는 위압감에 주눅이 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다가 2015년을 기점으로 선수 개인 응원가와 많은 팀 응원가가 생기고,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8~9회에 무조건 한 번은 꼭 부르는 것으로 굳어졌다.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노래, 우리의 노래 한곡 불러보겠습니다. 부산갈매기!!--[* 이런 방식을 정착시킨 사람이 현 롯데 응원단장 조지훈이다.] 물론 그렇다고 경기내내 꼭 한 번만 부르는 것은 아니었으며 경기 초반에 빅이닝을 했다거나, 팀이 무득점 행진을 이어가다 선취점을 냈을 때도 분위기 전환을 위해 불려지긴 했다. 또 패턴이 있어서 부산 갈매기에 이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승전가[* 롯데롯데롯데롯데~ 승리의 롯데~ 하는 유명한 노래가 이것. 원곡은 남북전쟁에서 쓰이던 군가인 [[Battle Hymn of the Republic]]이다.]가 콤보로 이어진다. 야구장에 롯데 경기를 보러 왔다면 반드시 한 번은 부르고 가야 하는, 말 그대로 팀과 롯데팬들을 상징하는 노래였던 것이다. 많은 종류의 응원가가 활성화되고 노래 자체를 사용할 수 없었던 2019년부터 2022년까지는 의미가 많이 줄어들었으나, 롯데가 암흑기를 끝내고 반등한 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에는 야구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경기가 끝나면 뭔가 찝찝하다고 표현할 정도의 위상을 가진 곡이었고, 부갈 타이밍이라는 표현도 있었다. 역전이나 극적인 끝내기같은, 롯데팬들의 분위기를 끓어 오르게 하기에 매우 적합한 노래였던 것. 야구 뿐만 아니라 [[수원 kt 소닉붐|부산 KTF 매직윙스-부산 kt 소닉붐]] 농구단도 2006~2007년 사직으로 이전한 시즌에 부산 갈매기를 응원하고 사용하기도 했다. [youtube(c6e5I3XmfiE)] 사직구장에서의 끝내기.(바쁜 사람은 37초부터 보자.) 이렇듯 롯데팬들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이만한 노래가 없었다. [youtube(n3q9F3A2bTc)] 이 동영상은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준플레이오프/2009년|2009년 준플레이오프]][* 그 유명한 [[김거김]]이 이 시리즈 3차전에서 나왔다.] 1차전 당시의 모습으로, 부산MBC의 해설자로도 활동한 최효석(둠씨)이 촬영하였다. [[8888577]]의 암흑기를 끝내고 중흥하게 된 시기라 팬들의 전투력도 엄청났던 시기이다. 이때의 가을야구에서는 부산갈매기 콤보를 1회 공격부터 부르는 응원패턴으로 팬들의 전투력을 고조시켰으나...[[KBO 준플레이오프/2008년|2008년 준플레이오프]] 스윕 [[KBO 준플레이오프/2009년|2009년 준플레이오프]] 1승 후 3패 [[KBO 준플레이오프/2010년|2010년 준플레이오프]][* [[턱거돼]]가 나온 그 시리즈 맞다.] 2승 후 3패([[리버스 스윕]]) 당한 이후 [[KBO 플레이오프/2011년|2011년 플레이오프]]부터는 1회에는 때창을 하지 않았다. [youtube(IxEhybbWqKI)]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제16대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문재인]] 당시 [[법무법인 부산]] 소속 변호사와 함께 열창했다. 그러나 당시는 롯데가 신나게 [[8888577]]을 찍던 시기였고, 결국 노무현이 대통령이 당선되고 직무를 수행하고 있던 2006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엘꼴라시코]]에서 9회말에만 6점을 내주며 9:4 경기를 9:10으로 패하자[* 여담이지만 LG 트윈스도 [[6668587667]]을 찍던 시기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강병철]]이 [[부산상고]](현 개성고) 동문이라는 점 때문에 어떤 초등학생이 강병철 감독 퇴진에 힘써달라는 글을 청와대 열린마당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20907#home|롯데팬 '어린이'의 속터진다는 글]] [youtube(71ZSHiWY3CI)] [youtube(e1yFj9K4VOs)]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가 이 부산갈매기를 이번에는 [[박정태]]와 함께 완창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롯데 자이언츠의 팬인데,[[http://www.sisaweek.com/news/articleView.html?idxno=98180|[문재인 시구 뒷이야기] 대통령은 ‘롯데팬’, 참모들은 ‘기아팬’]] 최동원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를 만들 때 자신이 법에 대해 무지해서 관련 [[노동법]]에 대해 법률자문을 받으려고 지역 법률사무소를 찾던 중, "노동법에 대해 정통한 법률사무소가 무료상담을 해준다더라."라며, 지인이 노무현-문재인 법률사무소를 소개해줬다고 한다. 당시 법률자문은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문재인]] 변호사가 맡았고, 이 인연으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었다고. 또한 [[최동원]]은 은퇴 이후, [[노무현]]에 의해, [[꼬마민주당]]에 영입되어 국회의원으로 출마한 적도 있었으나, 낙선하고 만다. 응원가답지 않게 구슬픈 음색[* 당장 이 곡의 조성부터가 단조(C minor)로 되어 있으며, 부산 갈매기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역시 단조(G minor)로 쓰여졌다.]이 특징으로 강팀보다 약팀이었던 시절이 긴 롯데와 환상적인 궁합을 자랑했다. 거기다 가사 역시 그다지 밝은 내용이 아니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는 아무래도 '''한많은 세월을 오래 겪어야 했던 롯데 자이언츠, 더 나아가 [[부산광역시/스포츠/역사|부산 스포츠 팀들]]을 응원하는 [[부산아재]]들의 상황'''과도 기가 막히게 맞아 들어간다. 특히 '''[[8888577|4년 연속 꼴찌를 포함,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시련을 겪은 이후엔 모종의 '''한'''이 서려있다고 표현할 정도. 00년대 중후반의 중흥기를 거쳐 10년대 초중반까지의 전성기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 지금까지 다시 이어지는 침체기에도 돌아오지 않는 순이(우승)[* 참고로 부산 연고 구단의 마지막 시즌 우승은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이며, 챔피언 결정전 우승은 1997 시즌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농구가 먼저 끝났다)이다. 이후 1999년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갔으나 한화에게 패했고, 10-11년에는 지금은 연고이전을 한 부산 kt(現 수원 kt)가 정규리그 우승을 한 적이 있지만 불행하게도 4강 PO에서 [[제스퍼 존슨]]이 시즌아웃당하며 [[원주 동부]]에게 업셋을 허용했었다. 이후 12년 뒤 사직에 새로 입주한 [[BNK 썸]]이 오랫만에 우승을 안겨주려고 했으나 하필이면 상대전적이 약했던 [[아산 우리은행]] 상대로 스윕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를 열망하며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명+갈매기 등 활용이 가능했기 때문에 팬들도 유니폼에 출신 지역 혹은 별명+갈매기를 유니폼에 마킹하는 케이스도 매우 많았고 [[마산 야구장]]을 제2홈구장으로 쓰던 시절엔 마산갈매기로, NC 다이노스의 창단 이후 제2홈구장으로 쓰는 [[울산 문수 야구장]]에서는 울산갈매기로 개사해서 불렀던 시절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